요즘 우리 유년부 어린이들의 행동을 지켜보노라면 놀랄 때가 많이 있다. 아이들의 생각이 참 깨끗하고 어른들보다 더 슬기롭다는 점에서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나를 포함해서 우리 어른들의 비뚤어진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특히 순수해야 하는 아이들에게서 1등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1등이 2등에게 또는 2등이 1등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모습들을 발견할 때 그러하다. 사실 부모님이 자식들을 위해 기도할 때 남의 머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꼬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는 않는다. 그 어떤 부모님도 자식들이 남보다 뒤지기를 바라는 분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 기도의 이면에는 남을 어떻게 해서든지 누르고서라도 내가 이겨야만 한다는 경쟁심과 1등 지향 의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의 생활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면 '경쟁,' '1등'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생각 속에 얼마나 깊이 뿌리 박혀 있는지 알 수 있다. 몇 해 전에 어느 기업이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라는 문구와 함께 자기들이 1등 기업임을 강조하는 광고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광고가 전파와 지면을 탄 후에 그 광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어떤 비판이나 반향도 없었다. 그것은 이미 우리의 무의식 속에 '1등 지향 의식'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것만이 아니다. 우리네 정치는 정권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남의 살 깎기에 여념이 없고, 1분이라도 남보다 더 공부하지 않으면 옆에 같이 앉아 공부하는 친구들, 아니 경쟁자들에게 눌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는 입시 교육의 현장 속에서 밤잠 안 자고 죽어라고 공부를 해서 결국 1등을 하고 나서는 "1등을 한 순간 비로소 자유를 누렸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다 이루었다'는 심정으로 자살을 해버린 한 여학생의 죽음이 현실을 잘 이야기해 준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예수님의 몸인 교회 안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됨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가 다른 교회의 주보라도 손에 넣게 되면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곳은 예배 참석 인원수이다. 그 통계란을 보고 자기 교회의 교인 수와 비교해 보아서 만약 자기 교회의 숫자가 더 많으면 왠지 자부심을 느끼지만 그 반대의 경우 기가 죽거나 심하게는 자기 교회의 교역자의 실력(?)까지도 들먹이며 비난한다. 교회는 줄어가는 교인 수를 확보하고 늘이기 위해서 엄청난 선물 공세도 마다하지 않고, 심지어는 다른 교회에서 교인들을 빼앗아 오는 일까지 벌어진다. 물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순수하게 열심히 전도하는 교인과 교회가 대다수이겠지만, 비뚤어진 동기와 비상식적인 태도로 교인 수를 확보하는 일부 잘못된 교회들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무엇이든지 내가 이겨야 하고, 우리 교회가 잘나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예수님의 섬김의 정신은 대외 홍보용으로 일년에 한 두 번씩 양로원에나 가서 먹거리를 전달하는 한낮 일과성(一過性)의 의식(儀式)으로 빛 바래 버린 것은 아닌지. 이 세상이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더라도 예수님의 몸인 교회만큼은 세태를 비판하고 꾸짖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따라가지는 말아야 옳은 것이 아닐까.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렇지 뭐! 경쟁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선의의 경쟁은 오히려 꼭 필요하지 않은가! 교회의 경쟁적인 성장을 통해서도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면 그건 좋은 일이 아닌가!'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에 들려오는 소리들이다. 이 소리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 머리에도 어김없이 파고드는 생각들이다. 그렇다. 현실을 보면 경쟁 자체가 나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현실'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대해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올바로 보고 성경이 우리를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들 중에 창세기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인과 아벨이 각각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다. 그러자 가인의 얼굴색이 변하면서 아벨을 미워하기 시작하였고, 그 미움이 결국 가인을 살인자로 만들어 버렸다. 동생에게 관용을 베풀지 못하고 자기만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소유욕과 그릇된 경쟁심이 낳은 끔찍한 결과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가인과 아벨은 창세기에만 나오는 인물들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될 수도 있고 만날 수도 있는 인물들이다. 가인처럼 항상 자기보다 잘난 학생들의 그늘 아래에서 좌절감과 함께 그들에 대한 미움과 시기심을 키우는 학생들이 있고, 아벨처럼 교인 수 확보를 위해 모셔가기 경쟁까지 하는 전쟁터 속에서 상처 입은 교인들이 있고 날개가 꺾인 교역자들이 있다. 이것이 너나 없이 높아지려고만 하고 많아지려고만 하는 이 세상의 또 다른 비극적인 현실이다.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 : 2) 그렇다. 이 세대는 경쟁에서 승리한 1등을 사랑하고 동경한다. 미국 메이져리그에서 수많은 강타자들을 아웃시키고 승리투수가 된 박찬호를 사랑하고, 수 백대 일의 경쟁을 뚫고 고시에 당당히 합격한 사람들을 동경하고, 일류 대학에, 그것도 수석으로 입학한 학생들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주님은 누구를 사랑하라고 하셨고 또 누구를 사랑하셨던가.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 주신 이 음성을 듣고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해야 한다. 이 세대를 본받아서 경쟁하고 1등만을 추구하던 마음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마음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성경은 또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3-11) 이 말씀은 친히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의 마음을 품고 낮아져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씀이 아닌가. 하지만 이 말씀이 나의 생활이 되지 못하고 다만 교리에만 머무르고 있음을 문득 문득 발견할 때마다 밀려오는 한탄스러운 감정은 막을 길이 없다.
노자는 도덕경(道德經) 8장에서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했다. '물은 모든 것을 이롭게 하면서도 서로 다투지 않으며(水善利萬物而不爭), 뭇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도 가기를 좋아하기 때문에(處衆人之所惡) 고로 진리에 가장 가깝다(故幾於道)'는 것이다. 그렇다. 물은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지하로 끊임없이 아래로 흘러내린다. 세상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으로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그것이 진리이다. 그러나, 물이 항상 아래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서 내려와 아래로 흐르기만 하던 물도 이글거리는 태양이 뜨면 수증기가 되어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는 말씀이, 그리고 "하나님 됨을 포기하시고 사람을 섬기기 위해 낮아지신 주님의 마음을 품으라"는 말씀이 더 이상 우리에게 교리가 아니라 생활이 될 때, 그래서 우리가 위만 쳐다보면서 높아지려고만 하거나 낮은 자를 밟아 누르려 하지 않고 아래도 쳐다보면서, 아니 아래로 내려와서 낮은 자로 섬길 수 있게 될 때, 그 때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낮아지신 주님을 지극히 높여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또한 그렇게 높여 주실 것이다.